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정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은 짧은 주기로 변화해 왔다. 양극화 체제에서 다극화로, 그리고 미국의 일방주의로 흔들리던 세계질서는 다시 9ㆍ11 테러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여기에 경제위기와 가속화된 헤게모니 경쟁이 더해져 불확실한 미래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동아시아는 80년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새로운 경제적 변수로, 이후 독자적인 문화권과 정체성의 근원이라는 문화적 변수로 세계질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세계 정치학계의 관심도 문화적 상대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변수와 차이에 대한 재발견에 집중된다. 《세계정치》 21호는 이와 같은 학계의 관심에 발맞추어 “과연 동아시아 지역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던진다.
동아시아 지역의 범주 안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의 근원을 밝히는 것은 비단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뿐 아니라, 세계정치의 먼 미래와 가까운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 대한 연구는 아랍 및 아프리카, 유라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 서구 문명의 주류에서 비껴나 있던 지역에 대한 조망의 일환으로써 근대화와 합리주의 전통의 이면을 파악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300쪽)